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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에 거래되는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책이 절판돼서 살 수가 없어서 비싼 값에 중고거래하시고,
국회도서관에 몇 만 원씩 줘서 제본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시더군요.

원래 이 책 자체가 정부부처 사이트에 올라왔던 내용을 엮은 것뿐입니다.
좋은 자료이니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왜올랐나'②유동성과 부동산]‘큰 칼’이냐 ‘작은 칼’이냐

내수부진에 돈 줄은 못 죄고…부동산은 뛰고

[실록 부동산정책40년③] 제1부 ‘왜 올랐나’

특별기획팀 2007.02.14

 

 

판교발 집값 불안이 확산되던 2005년 5월. 부동산 투기조사를 벌이던 국세청 직원들은 한 사람이 강남에서만 무려 40채의 아파트와 상가를 사들인 사례를 적발하고는 깜짝 놀랐다. 김 모(56세·무속인)씨는 1999년부터 2005년4월까지 본인과 자녀 3명의 이름으로 강남 개포동과 대치동에서만 아파트 36채와 상가 4채를 집중 매입했다. 이후 아파트 값이 급등하자 본인 명의의 아파트 7채를 팔아 13억원의 양도차익을 챙겼다.

 

한 사람이 134억 은행대출로 강남 아파트·상가 40채 사들여

국세청 직원들을 한 번 더 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이 아파트를 사들인 자금이 불법 자금이나 탈루소득 같은 ‘검은 돈’이 아니라 은행 대출이라는 점이었다. "과거 부동산 투기자금의 출처 조사를 하면 어김없이 사업 자금 전용이나, 상속·증여세 탈루 자금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당시 투기조사에서는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통한 것이어서 양도소득세 축소신고 외에는 달리 처벌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는 게 당시 조사 직원의 설명이다.

김 씨는 주택담보대출로 아파트를 사고 그 아파트를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는 방법으로 10개 금융기관에서 무려 134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가 세무서에 신고한 연 소득은 1200만원인 반면 대출이자만 매년 8억원에 이르렀다. 김 씨가 신고한 소득으로는 한 달 이자도 갚기 어렵지만 은행 등 금융권에서는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신문은 "국세청이 밝힌 부동산 투기혐의자의 사례를 보면 은행들이 투기꾼들에게 투기자금을 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경향신문 2005년 6월14일자)고 지적했다.

 

2005년 상반기 주택담보대출금의 43%가 강남 분당 등 5개 집값 급등지역의 집을 사는데 들어갔다. 사진은 분당 전경 <사진=홍보지원팀>

세간에서는 당시 ‘무리해서라도 빚내서 집 사면 돈 번다’는 것이 공식처럼 됐다. 당시 은행에서 1억원을 빌려 3억 짜리 강남 아파트를 샀을 때 연간 은행에 내는 이자는 573만원(대출 금리 5.73%)인 반면, 3억짜리 집값은 16%(2005년)올랐다. 1년 동안 대출이자보다 9배 많은 4500만원의 차익이 생긴 셈이다. 2006년 말까지 저금리 기조 속에서 대체투자 부진까지 겹쳐 은행권에서 주택담보대출로 218조2700억원의 돈이 가계로 풀려 나갔고, 이 돈은 고수익을 쫓아 부동산시장으로 몰려갔다.

과잉유동성이 만든 버블, "돈 있는 곳에 투기 있었다"

부동산 시장에서 주택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돈’이다. 부동산이 좋은 투자처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돈이 많이 풀려 통화량이 증가하면 어김없이 투기성 부동산 수요를 유발해왔다. 주택도시연구원 박신영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과정에서 시장기본가치의 증대, 통화량의 증가, 적절한 대체투자 시장의 미성숙 등으로 부동산 값이 상당기간 큰 폭 상승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 말 중동특수와 1980년대 말 3저 호황 등 국내 유동성이 풍부해졌을 때 어김없이 집값이 크게 상승했다. 서울대 김용창 교수는 저서 ‘한국의 주택토지정책’(2004년)에서 "그동안 부동산가격 급상승의 특성을 보면 해당 시기별로 특수한 과잉유동성에서 비롯된 자본순환의 위기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부동산 가격 변동의 큰 특징으로 ‘과잉유동성에 의한 외생적 위기’를 꼽았다.

 

국토개발연구원의 ‘주택시장 모형연구’(1994년)는

"통화공급량 변동은 12개월 후부터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장기간 동안 계속되며,

실질통화량 1% 증가는 주택공급을 4.3% 증가시키는 반면

주택수요 총 증가효과는 9.9%에 달해 주택가격을 1.58% 올려놓는다"고 분석했다.

1978년-사람은 중동으로, 돈은 땅으로…

‘중동열기’ 속에 부동산 값이 급등했던 1970년대 말, 언론은 ‘77년을 특징지었던 증권 붐, 부동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환물투기(換物投機), 건축경기의 과열, 이에 따른 일손 부족, 건축자재의 품귀파동이 모두가 중동을 떼어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었다.’(조선일보 1978년 1월1일자)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동건설 붐을 타고 들어온 ‘오일 달러’와 중화학공업 육성책으로 유발된 통화팽창은 물가를 치솟게 했고, 시중에 넘치는 부동자금은 땅과 아파트로 몰려 부동산시장을 달궈놓고 있었다.

 

중동특수 열기로 인한 경기호황과 부동산값 상승을 예측하는 1978년 1월1일자 조선일보 특집면.

1974년 1차오일 쇼크로 침체하던 한국 경제는 1976년부터 세계 경제 회복과 함께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1977년에는 수출이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수출호조에 중동진출 효과까지 겹쳐 당시 우리나라는 1230만달러나 되는 경상수지 흑자를 냈다. 중동 진출 인력은 1년 사이 3배가 늘어 해외기능공만 4만여 명이 진출했다. 1976년 경제성장률은 10.6%. 1977년에도 10.0%였다. 정부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풀면서 통화량은 급속히 팽창했다. 도매물가 상승률이 11.6%에 달했다.

유동성 증가와 인플레 압력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여 토지와 주택가격을 밀어 올렸다. 1977년 초부터 1978년까지 아파트 투기열풍이 이어졌다. 삼익주택이 여의도에 지은 목화아파트는 당시로는 최고인 45대1의 분양경쟁률을 기록했다. 뒤이어 지은 화랑아파트 분양에서는 70대1. 화랑아파트 당첨자는 하루아침에 15만~250만원의 웃돈을 거머쥐었다. 건설부 표본조사에서는 이런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투기세력에 분양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다리 건너면 20~30%의 프리미엄이 붙는 미등기 전매가 극성을 부렸다. 1978년 전국 땅값은 평균 49%, 6대 도시는 79%, 서울은 136%나 상승하는 기록을 쏟아냈다.

당시 정부는 ‘8.8조치’라는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통화 금융을 다루기보다는 규제와 제도개편에 초점을 맞출 뿐 중화학공업 육성과 고성장이라는 달리는 말의 고삐를 멈추지는 못했다.

L.B. 크라우스 UCSD(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명예교수는 1978년의 한국경제를 진단하는 한 기고에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손쉽게 축재한 자금은 자산, 특히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부추겼다. 부동산 투기자들에게 부동산 과열의 책임이 있지만 사실 은행으로부터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면 이런 과열 사태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대출의 주체는 개인보다는 기업이었지만 이미 30년 전, 손쉽게 얻은 자금은 투기로 연결됐다.

 

1988년-흑자경제의 그늘…투기의 부활

1980년대 후반의 부동산 투기열풍도 저달러·저유가·저금리가 가져다 준 흑자경제에서 비롯됐다. 달러 평가절하(엔화 평가절상) 상태를 만들기 위한 이른바 ‘플라자 합의’ 에 이어 유가가 하락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고 불리는 ‘3저 호황’이 이어졌다. 1986년 47억달러로 시작한 경상수지 흑자는 이듬해 100억달러, 1988년에는 145억달러에 이르렀다. 1986년부터 3년 연속 10%대를 넘긴 경제성장률은 1988년까지 3년 평균 10.76%를 기록했고 대선이 치러진 1987년 통화량 증가율은 전년 대비 30.8%에 달했다.

돈이 시중에 흘러넘치자 또다시 부동산 투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1987년 토지가격 상승률이 전년의 2배를 기록, 투기 광풍의 전조를 보이더니 1988년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1980~1987년 연평균 10.5%였던 지가상승률 1988년 전국 평균 27.5%, 이듬해 32.0%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1988년 13.2%를 기록한 집값 상승률 이듬해 14.6%, 1990년에 최고인 21.0%를 기록했다.

급기야 정부는 1988년 투기억제 지역의 확대, 양도세 중과, 투기꾼 및 부동산 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 및 토지공개념 도입을 골자로 하는 ‘8.10 부동산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투기억제의 강도에 비해 통화량 축소와 물가안정에 관한 부분은 그해 총통화량 증가율을 18% 선에서 억제한다는 것 외에는 뚜렷한 내용이 없었다.

2005년- 내수부진 속 과잉유동성과 부동산 투기의 딜레마

2001년 이후 부동산시장 불안은 세계적 저금리 추세에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차입금 축소 등 재무구조 개선 요구와 투자 부진 등으로 기업 부문에 대한 대출은 급속히 축소된 반면, 지금까지 은행 자산운용에서 비중이 극히 낮았던 가계 대출이 안정적 자산운용처로 부각됐다.

부실우려가 높은 기업 부문 대출은 자연스럽게 줄였고, 대신 담보(집)가 확실하고 이자 수익률도 높은 가계대출은 늘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생산성이 없는 가계 부문 대출을 제한하던 정부도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가계 대출에 대한 창구지도를 풀었다. 외환위기 이후 쏟아진 규제완화 및 유동성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갈 곳 없는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를 더욱 부추겼다.

은행의 가계대출 추이를 보면 2000년 말 54조2,000억원에 불과하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2006년 상반기 200조8000억원(2006년 말 218조 3000억원)으로 부풀었다. 특히 2001년과 2002년 중 주택담보 대출은 매년 50% 이상 초고속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카드사와 할부금융사 등 기타 여신전문 회사의 대출까지 포함할 경우 총 가계대출은 1999년 214조원에서 2006년 초에는 545조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의 일부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었으니 부동산 시장이 조용할 리 없었다.

 

부동산 '버블' 대책과 금리논쟁

이처럼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말, 그리고 2001년 이후의 부동산 과열에는 통화량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부동산시장을 잡는 정책적 노력에 유동성과 금리 등 통화운용정책의 고려비중은 낮았다. 서울대 김용창 교수는 "그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응하는 대책의 특징은 이처럼 부동산 부문 이외의 원인(과잉유동성)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부동산 부문 자체에서만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시장 교란의 원인과 처방 사이에 괴리가 있었던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최호상 수석연구원은 2006년 11월 발간한 ‘주택시장 불안과 금리’ 보고서에서 "영국 호주 미국 등은 주택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단계적으로 인상해 주택가격 상승을 둔화시킨데 비해 한국의 주택경기 연착륙 정책은 주로 수급조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2005년 상반기 기준 국내 주택가격 버블의 크기는 17%이며, 이 중 금리요인에 의한 것이 11.6%로 총버블의 3분의2를 차지한다고 진단했다. 또 경기 상승기에 금리조절 속도가 늦어진 것이 부동산 시장 과열의 큰 원인이 된 것이라는 판단을 내놓아 지난해 말 ‘금리논쟁’에 불을 지폈다.

경기와 부동산, 다른 방향으로 튀는 두 마리 토끼

유동성과 관련해 정부가 신중한 접근을 한 배경에는 2001년 이후의 부동산가격 상승이 과거와는 달리 내수 부진과 부동산 과열이 함께 찾아온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

"지금은 심각한 경기침체와 부동산과열이 같이 왔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거시적인 방법으로 유동성을 줄여서 부동산투기를 막는 것은 부동산 투기 억제의 효과는 별로 없고 그 대신 경기를 죽이는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우려가 있어..."(2003년 6월17일 국회재정경제위원회 속기록)

 

‘정부 행정력에 의존한 미시적 부동산 가격 안정대책만으로는 급등하고 있는 부동산가격을 잡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에 대한 당시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답변에는 부진한 경기와 부동산 과열이라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2001년 이후 저금리 속 부동산 값 급등이라는 고민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2004년 9월9일자)에 따르면, 세계 20개 국가의 주택가격을 조사한 결과 11개 나라의 집값이 두 자리 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가장 높은 곳은 홍콩으로 무려 28.7%나 급등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 25.5%, 뉴질랜드 22.1% 등이 20%가 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집값이 과거 정점기보다 과대평가돼 있다"면서 "중국과 남아공을 비롯해, 세계 3분의 2 지역에서 주택가격 거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적 저금리 속 주택 거품…각기 다른 처방

이 같은 세계적 주택가격 거품 앞에 경기 조절의 여유가 있는 국가들은 통화조절이라는 ‘큰 칼’을 사용했다.

 

영국은 2003년 11월 중앙은행이 주택가격 거품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상한다고 발표한 이후 9개월 동안 5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1.25% 포인트 인상한 결과 주택가격 상승률이 2003년 19.6%에서 2005년 5.3%로 둔화됐다. 호주도 2002년 5월부터 4년6개월 동안 8번에 걸쳐 기준금리를 2%포인트 인상해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6.25%까지 높였다. 그 결과 2003년 18.2%이던 주택가격 상승률이 2004년 6.9%로 안정됐다.

이처럼 영국과 호주 미국은 점진적 금리인상과 정책대응으로 연착륙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반면, 부동산 버블 붕괴로 10년간 복합불황을 겪은 일본과 스웨덴은 경착륙으로 인한 후유증을 크게 겪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웨덴은 1985년 이후 부동산 대출이 급증하면서 상업용 부동산이 1991년까지 116%나 상승하자 1988년 중반 이후 2년 반 동안 80여 차례 기준금리를 변경하면서 7%포인트 인상한 결과 부동산 가격이 1992년과 1993년 각각 9.2%, 11.2% 하락하며 부동산 관련 대출의 부실화와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담보대출 급증 등 유동성 과잉의 조짐이 2005년 1분기에 나타났지만 경기부진이라는 딜레마 때문에 2005년 10월부터 금리인상에 나섰다. 속도도 조절해 2~4개월 주기로 0.25%포인트씩 5차례 인상하는 한편, ‘작은 칼’인 금융기관의 대출 규제라는 미시적 방법을 병행했다.

 

‘작은 칼’, 미시적 대응의 사각지대를 잡아라

2005년 당시 미시적 대응은 바로 ‘투기지역’에서 아파트 담보대출을 1건이라도 받은 차입자의 추가 대출을 제한하는 ‘1단계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관리 강화방안’ 이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관리방안 1단계에서는 시장의 충격 정도를 감안, 대출 제한을 개인으로 정해 동일세대이더라도 배우자나 자녀, 또는 그들의 명의로 투기지역에서 여러 건의 추가 주택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후 돌려 막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주택담보대출 실태조사에 나서 현장을 확인한 결과 강남 송파 서초와 분당 용인지역에서 2건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차입자가 배우자 또는 자녀 명의로 추가대출을 받은 건수가 7개 은행에서 2116건에 총 1881억원에 달했다.

이후 2005년 8월 후속 대책에서 처음으로 소득에 따라 상환능력을 고려하는 제도인 DTI(Debt To Income) 규제까지 추가 도입됐지만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는 2006년 하반기까지도 꺾이지 않았다. 은행권주택담보대출은 2006년 4월 및 5월에 각각 3조1000억원과 3조원 증가했는데 이는 2005년 중 월 평균 1조7000억원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당시 은행권에서 ‘4강 체제’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경쟁의식이 맞물리며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경쟁적으로 확대한 데도 원인이 있었다.

저금리-부동산과열-대출증가-소비부진-저금리 악순환

결국 낮은 금리는 상당수 전세 수요자를 매매 수요로 돌아서게 했다. 아파트 매매계약서만 있으면 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직장인들은 벌어들이는 소득의 4분의 1 이상을 이자로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면서 이자 부담 때문에 소비를 하지 않고, 소비 부진은 내수부진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순환 고리가 지속됐다.

 

금융연구원 한재준 연구원은 "소비위축 우려로 정책당국이 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기 어려웠던 점은 인정되나, 부동산시장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확대에는 시차가 따르고 금리 이외의 수단인 단기적인 대출규제 방책만으로 안정을 도모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동산 공룡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

정부는 지난해 11.15 ‘부동산시장 안정화방안’과 올해 1.11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개편 방안’에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해 부동산 버블이 더 커져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는 조치를 적극 취하고 있다. 토지보상금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채권보상을 확대 하는 등 토지보상제도를 고치고,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등 더 강력하고 근본적인 유동성 관리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언론’과 투기세력들은 이 같은 미시적 대응과 대출규제조차 ‘서민의 내집마련 기회를 옥죈다’고 흔들고, 서너 발 앞서 부동산 시장 ‘경착륙’과 ‘복합불황’을 경고하며 꺼져가는 ‘부동산 불패’ 신화에 끝없이 불을 지피고 있다. 대출규제 대상인 투기지역 내에서 2건 이상의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서민층이라고 보고 정책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인지 반문하게 한다.

대표적인 시장왜곡의 결과물인 부동산이라는 공룡 앞에 정부는 ‘저금리를 통한 성장촉진’과 ‘부동산 가격 억제’라는 서로 상반된 목표의 정책 퍼즐을 맞춰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살리기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한 쪽 손’이 묶인 채 부동산 시장왜곡과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런데도 ‘나머지 한 쪽 손’마저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정부의 싸움은 그만큼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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