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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에 거래되는 <대한민국 부동산 40년> 

 

책이 절판돼서 살 수가 없어서 비싼 값에 중고거래하시고,
국회도서관에 몇 만 원씩 줘서 제본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시더군요.

원래 이 책 자체가 정부부처 사이트에 올라왔던 내용을 엮은 것뿐입니다.
좋은 자료이니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어떤 정책 폈고 왜 못잡았나 ①]"아니, 실거래가를 그대로 적으라고요?"

[실록 부동산정책40년 ⑥] 시장 투명화와 실거래가 신고

특별기획팀 2007.02.21

국정브리핑이 주택도시연구원·국토연구원·금융연구원과 공동으로 기획한 <실록 부동산정책 40년>은 ‘제1부, 왜 올랐나’에 이어 '제2부, 어떤 정책을 폈고, 왜 못잡았나' 를 통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떤 우여곡절 끝에 탄생 했으며 역사적 의미와 쟁점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2부의 첫번째 주제로 <형평성과 투명성 제고 정책>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제2부 어떤 정책 폈고, 왜 못잡았나

<투명성과 형평성 제고 정책>

① 시장 투명화와 실거래가 신고
② 오락가락 양도세의 교훈
③ 보유세 제자리 찾기와 종합부동산세

 


"명의(이름)도 가짜, 가격도 가짜."

그동안 부동산은 엄청난 시세차익을 내고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세금을 빼돌릴 수 있는 불투명한 거래의 대명사였다. 부동산시장에는 가명, 차명, 명의신탁, 이중계약서 같은 단어가 늘 따라다녔다. 신고가격과 실제가격이 따로 놀아 무엇이 진짜 가격인지 알 수 없고, 가격 부풀리기와 이중계약서가 관행처럼 돼왔다. 세간에는 ‘부동산 세금을 제대로 내면 바보’라는 말이 상식이 돼버릴 정도였고,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마음만 먹으면 투기로 얻은 불로소득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검은 거래’는 ‘부동산실명제’와 ‘실거래가 신고-등기부 기재’라는 부동산시장 질서를 바로 잡는 제도를 통해 하나 둘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거래를 투명하게 하고 부동산 투기소득의 숨은 거처를 원천적으로 없애려는 노력은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차일피일 미뤄오던 오랜 숙제를 뜯어고치게 만들었다.

아파트의 실거래 가격이 단지별 평수와 층별로 공개(아파트 실거래가 공개시스템:http://rt.moct.go.kr)되고, 부동산 소유· 거래· 납세에 대한 개인· 세대별 통계가 정확히 집계(행정자치부 부동산정보센터:http://rimc.mogaha.go.kr)돼 국민들이 이를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시장동향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은 물론 소유현황과 편중 정도, 수급 및 거래실태 파악이 가능하다. 투명한 시장구조는 이미 우리 실생활에서 피부에 와 닿고 있으며 거래 투명화를 통해 투기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마련되고 세제 형평성도 높아졌다.

부동산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
부동산정보 알리미 사이트


1995년 1월6일. 문민정부 3년차에 접어들면서 새해 벽두 김영삼 대통령의 내외신 연두기자회견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부동산실명제 실시를 이미 지시했으며 곧 단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1993년 8월 전격적인 금융실명제에 화들짝 놀랐던 시장은 또 한번 요동쳤다.부동산 실명제의 탄생

 

부동산실명제 실시를 1면 톱으로 보도한 1995년 1월7일자 신문

 


그해 1월27일 입법예고된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은 실소유자 명의 등기와 명의신탁 무효에 관한 2개의 핵심조문을 포함해 본문 15개조 부칙 5개조의 간단한 법이었다. 모든 명의신탁 약정과 이에 따른 부동산 물권변동은 무효이며,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도록 했다. 실명등기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부동산가액의 3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부과토록 했다. 1995년 3월 부동산실명제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당시 한국일보는 "부동산실명제는 금융실명제와 더불어 ‘경제혁명’의 양축이다. 투기 뇌물 탈세 등 ‘검은 거래’가 돈이나 부동산을 통해 이뤄지고 있어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될 경우 이 같은 ‘검은 거래’가 구조적으로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11월 홍재형 부총리에게 부동산실명제 실시를 준비하도록 지시했고 경제기획원 이근경 국장이 비밀리에 상당한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을 계기로 부동산실명제 논의는 재무부와 통합된 재정경제원으로 옮겨졌다. ‘금융실명제실시단’이 ‘금융부동산실명제실시단’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법원 법무부 등 관계부처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 ‘부동산 실소유자 명의 등기제’의 법안 준비에 들어갔다.

 

부동산 실명제 왜?

부동산실명제의 골자는 ‘등기 따로, 실제 주인 따로’의 부동산차명거래인 명의신탁을 금지시키는 것이었다. 1912년 일제시대 때 도입된 명의신탁은 그동안 가장 대표적인 부동산 투기 수법으로 지목돼 왔으며 재산은닉 및 분산 수단, 기업의 부동산 취득수단 등으로 악용돼 부동산거래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부동산 등기제도를 부실화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가 처음으로 부동산실명제 실시를 검토한 것은 1989년 조순 부총리 때다. 당시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인 한이헌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부동산투기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토지공개념의 일환으로 부동산실명제 시행을 검토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재계는 명의신탁 금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유계약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위헌론을 제기했다. 결국 정부는 부동산실명제 논의를 유야무야하고 말았다. 궁여지책으로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제정(1990년), 조세포탈과 부동산투기 등을 목적으로 한 명의신탁을 금지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이 법률에는 정상적인 사유가 있을 때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를 두고 있어 약간의 법률무장만 한 투기꾼이라면 얼마든지 명의신탁에 의한 부동산투기를 할 수 있었다.

1993년 8월 이미 금융거래 실명제가 도입됐고, 1996년 1월부터 금융자산소득 종합과세제도까지 실시될 경우 비실명금융자금이 가명 및 차명으로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갈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부동산 부문에서도 실명제를 도입해 금융거래 실명제를 보완할 필요도 제기됐다.

부동산실명제에 의해 모든 부동산등기는 실권리자 이름으로 등기하게 됐으며 명의 신탁은 금지됐다. 종전의 명의신탁은 1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부동산등기 실명제는 당시 부동산거래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부동산 거래자에게는 이 제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됐지만, 투기 및 불법증여 탈세나 세금회피 등의 목적으로 명의 신탁을 악용한 과거의 관행을 단절할 수 있는 단초가 됐다.

부동산 실명제 빠르게 정착

부동산실명제 실시 후 2년여 지난 1997년 5월 재정경제원이 발간한 ‘부동산실명제 백서’에 따르면 2년 동안 부동산을 실소유주 명의로 전환한 건수는 6만5976건으로, 총면적은 1억3072만평에 달했다. 건당 평균면적이 1981평에 이르는 셈이다. 또 부동산실명제를 위반한 사람들에게 부과된 과징금도 31건에 10억원을 넘었다.

특히 법인의 부동산 실명전환 건수는 1684건으로, 개인명의로 돼있던 부동산을 법인 앞으로 돌린 건수는 1461건에 달했다. 그동안 기업이 부동산매입에 임직원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당시 한 대기업이 실명제를 위반하고 다른 사람 명의로 대규모 땅을 숨겨뒀다가 적발돼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신문들은 부동산실명제 추진 초기 "부동산 시장은 아주 냉각되거나 가격이 폭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명의 신탁된 부동산의 실제 소유자들은 경과조치기간에 자진 신고하여 실명으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남의 명의로 된 부동산을 매각하여 현금으로 챙기지 않으면 안 될 처지다. 매물홍수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한국일보 1995년 1월7일자)

과연 그랬을까. 1995년 하반기 부동산실명제등 투기억제정책이 힘을 발휘하면서 부동산시장은 안정세를 보였다. 땅값 상승률은 0.6%에 그쳤고 집값은 전년보다 0.2% 떨어졌다.

하지만 1996년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연초 터진 우성건설의 부도 등 건설업체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정부의 금융지원책과 함께 각종 규제 완화책이 쏟아지면서 그 해 주택가격은 다시 1.5% 상승 반전한 것이다. 정부는 1년간의 유예기간이 끝나고 명의신탁 매물이 본격적으로 나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막을 것으로 내다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결국 부동산실명제는 매물확대를 통한 가격안정이라는 직접적 효과보다는 부동산 거래 시장을 한 단계 투명하게 했다는 성과로 만족해야 했다.

실거래 가격 신고-등기부 기재 제도의 등장

"아니 세상에 실거래가격을 그대로 적으라고요?"

2006년 6월 말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중개소에서는 입씨름이 한창이었다. 아파트 매도자는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덜 내려고 구청에 신고할 계약서에 실제 거래가격에서 2000만원을 뺀 가격을 쓰자고 한다.

"다운계약서 좀 씁시다. 실거래가를 곧이곧대로 신고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심지어 "다운계약서를 써주면 500만원 정도 더 깎아주겠다"고까지 제의한다. 하지만 아파트를 새로 산 사람은 나중에 자신이 그만큼 싸게 산 것으로 돼 매도할 때 그 만큼 ‘세금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계약서뿐만 아니라 아파트 등기부등본에까지 실거래가액이 기재된다는 부동산중개업자의 말에 결국 계약서는 실제 거래가격대로 적혔고 중개업자가 이를 인터넷을 통해 시·군·구에 신고하고 거래신고필증을 받아 등기소에 제출하는 것으로 계약은 성사됐다.

 

실거래가 신고'가 이제 부동산 시장의 '상식'으로 통한다고 평가한 매일경제 기사

 

부동산실명제가 ‘이름’ 부분의 시장 투명화 조치였다면 2006년 1월1일부터 시행된 부동산 실거래 가격 신고제와 6월1일부터 실시된 부동산 거래 가격 등기부 기재는 ‘가격’부분에서 부동산 시장을 투명하게 만든 또 다른 ‘사건’이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전국 모든 부동산에 대해 실거래가를 신고하도록 법을 바꾼 일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엄청난 사건이다. 유사 이래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에 관한 한 단일가격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고할 때 따로, 세금 낼 때 따로, 대출받을 때 따로 하는 식으로 그때그때마다 다른 가격을 쓰던 관행이 반만년 역사를 이어왔다."(매일경제 2007년 2월2일)

‘이젠 실거래價가 상식’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한 경제신문에 실린 부동산 재테크 관련 기사 내용이다.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실거래가 신고는 이제 상식입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기사는 "실거래가 신고제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정착되면 우리나라 부동산의 패러다임을 혁신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지나친 주장만은 아닐 성싶다"고 끝맺고 있다.

 

RTMS라는 '괴물 프로그램'

주택법에 이어 중개업법과 지적법 세법 등이 줄줄이 바뀌면서 실거래가를 신고하지 않는 것은 불법행위가 됐다. 건설교통부는 부동산거래관리 시스템(RTMS)라는 '괴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거래가를 검증하고 신고 위반 사례를 적발해내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공시가격과 거래 가격, 경·공매 가격, 국민은행 시세표 등을 종합 조사해 산출한 기준가격을 RTMS에 올리면 실거래가 신고 위반이 의심되는 거래는 자동적으로 ‘부적정’ 이름을 달고 튀어 올라온다.

다운계약서를 썼던 사람들 가운데는 일선 시군구와 국세청의 단속에 적발돼 덜 낸 취득세의 무려 24배나 되는 과태료를 물기도 했다. 중개업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정부의 통합전산망은 부동산실명제와 실거래가 신고제 이후 개인은 물론 친·인척의 거래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단골 숙원 사업"

사실 부동산 실거래가격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부동산 시장 시스템의 근본적 ‘허점’인 동시에 세제를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와 국세청, 행정자치부 건설교통부 등의 오랜 ‘숙제’였다. "투기 소득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매기고 싶어도 실제 거래가를 포착할 수 있어야 말이죠." 역대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이 만들어질 때마다 이런 푸념이 따라다녔다.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부동산 거래를 '투명하게'하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신문 특집기사.


김용민 전 재경부 세제실장(현 조달청장)은 "실거래가 등기제도와 이를 토대로 한 공평과세는 1993년 이후 매년 재경부 세제실의 숙원사업이었다"고 회고했다. 학계에서도 공시지가의 적정성과 시가 근접도를 높이기 위해 실거래가 등기제와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과 이를 기초로 한 공시지가 조사·산정 체계의 개선을 주장해 왔다.('공시지가제도의 선진화 방향에 관한 연구'-국토연구원 채미옥, 1999)
1996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재정경제원은 "실가기준으로 양도세 과세를 전환하기 위해 거래가격 등록제 도입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복잡한 이해관계와 각종 제도적 장벽 때문에 유야무야 됐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인수위 보고서도 등기부 등본에 실거래가의 기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거래 투명·공평과세' 두 마리 토끼 잡기

"부동산 정책의 답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답이 다 있다. 그런 데도 이러한 정책이 채택되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이해관계와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의 방향은 첫째,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고…."(2005년 6월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다시 원점에서부터 근본대책을 마련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2개월여 동안 진행된 부동산 정책회의에서 실거래가 신고는 부동산시장 투명화를 위한 핵심정책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처음 논의 과정에서는 법원의 반대가 벽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산소유 관계를 나타내는 공식적인 집문서 땅문서인 등기부에 가격이 등재된다는 것은 국가기관인 법원이 그 가격을 보증해주는 셈이어서 법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격의 등기부 기재는 민법의 3대 원칙중 하나인 사적 자치의 원칙(계약자유의 원칙: 개인은 계약 등 법률관계를 자유의사에 기초하여 형성할 수 있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문제점이 있는데다 무엇보다 집행상의 어려움도 컸다.

"실거래 가격을 등기부에 기재하는 것이 어렵다면 신고라도 하게 합시다."

이미 2003년 10.29 대책에서 실거래가 신고제를 추진했던 건교부는 실거래가 신고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이제 이 시스템을 등기부 기재로 연결시키는 일만 남았다.

 

"법원을 설득하라"

법원을 설득하는 것은 재경부가 맡았다. 처음에 난감해하던 대법원도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사회적 요구와 메가톤급 무게가 실린 8.31 정책의 핵심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당시 김용민 재경부 세제실장은 "부동산 문제가 워낙 심각해져서 그랬던지 완강했던 법원의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의외로 호의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실거래가 신고나 등기부 기재 둘 중 하나만 돼도 성공이라던 투명화 과제는 이렇게 실거래가 신고와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 둘 다 달성됐다. 법원의 유권해석을 받아 8·31대책에 실거래가 등기부 기재제도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실거래가로 등기하면 지방세인 취득세와 등록세가 지나치게 높아진다는 문제가 생겼다. 서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행자부의 지적도 타당했다. 취·등록세 과표를 조정했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핵심정책

투기꾼들에게 실거래가 신고와 등기부 기재는 그동안 쌓아온 불로소득과 세금탈루의 피라미드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한 ‘가짜와 은닉의 종말’ 이다.


실거래가 신고와 등기부 기재는 8·31정책을 형성하는 핵심 축 가운데 하나였지만 당시 언론은 ‘투기억제’ 부문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이 두 가지 투명성 제고 조치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때로는 거래 위축이라는 핑계로, 때로는 전산시스템 미비로 수십 년 동안 미뤄져 오던 우리 부동산시장의 또 하나의 ‘구조적 맹점’이 마침내 해소되고 부동산 실거래가 파악체계가 정착됐다. 물론 일부 의도적으로 허위신고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감정상 등기부는 내 재산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집문서’다. 그렇게 만만한 문서가 아니다.

언론의 외면과는 달리 두 제도의 효과는 상당했다. 수십 년 동안 ‘거짓 신고 가격’에 둘러싸여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던 부동산 거래 내용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반 국민들도 실거래가격이 기재된 부동산등기부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되고, 매달 아파트 단지별 실거래 가격을 취합한 데이터베이스(DB)와 가격 조회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아파트 부녀회를 중심으로 한 호가 높이기는 구조적으로 어렵게 됐다.

2006년 1차 공개 때 500호 이상 아파트 단지 중 10건 이상 거래된 단지를 대상으로 한 것도 같은 해 하반기 2차 공개에서는 전체 아파트단지로 확대됐고 아파트별 면적과 가격형성에 영향이 큰 층별 정보도 추가됐다. 37만 1000건의 아파트 실거래 자료가 적정성 검증을 거쳐 투명하게 공개됐다.

이를 통해 재산세와 종부세 등 보유세의 세부담 형평성이 높아지는 효과도 생겼다. 그동안 공시가격은 시세(적정 시가의 80%)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공시가격 조사시점이 매년 1월 1일 기준이어서 1월 이후부터 이뤄지는 아파트값 등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짜와 은닉에 마침표"

그러나 앞으로 실거래가 자료가 축적되면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를 기초로 산정되기 때문에 공시가격은 시가의 적정수준으로 정해진다. 공시가격이 시세를 적정수준에서 반영할 경우 이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부세와 재산세의 세부담 형평성이 높아진다.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실거래가 신고제는 금융실명제에 버금갈 정도로 부동산 시장에서는 획기적 조치다. 정부는 투기가 더 이상 발붙일 수 없게 제도를 정비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사회정책비서관은 "투명하게 거래, 보유, 과세현황을 파악하고, 이들 통계를 국민들과 공유하게 되면 부동산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할 것으로 믿는다. ‘신고가격 따로, 실제가격 따로’ 식의 후진적 관성도 바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체계적이고 투명한 정책형성 과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거래가격이 등기부에 기재됨에 따라 부동산 관련 세금의 실거래가 과세제도의 기반도 구축됐다. 2007년부터 부동산 양도세를 실거래가 기준으로 부과할 수 있게 된 것도 2006년부터 시행된 등기부 기재제도 덕분이다. 투기꾼들에게 실거래가 신고와 등기부 기재는 그동안 쌓아온 불로소득과 세금탈루의 피라미드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한 ‘가짜와 은닉의 종말’ 이다.

■ 부동산 가격체계의 정비

과거 부동산에 매기는 세금을 보면

국세인 양도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등은 국세청에서 담당 공무원에 의해 결정되는 ‘기준시가’에 따라 부과되고,

지방세인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은 시장 군수 구청장이 매년 결정 고시하는 ‘과세시가표준액’에 의해 부과됐다.

이 때문에 같은 지역의 같은 지번을 가진 토지의 가격이 담당 부처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고 과세시가표준액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 역시 실질거래가격의 10~15%에 불과했다. 이 같은 불합리한 가격체계와 토지평가자격제도를 일원화해 1989년 4월 '지가공시 및 토지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공시지가제도가 도입되었고, 1990년 1월1일부터 공시지가가 공시됐다.

1990년 8월10일에는 ‘검인계약서제도’를 도입했다. 검인계약서가 도입되기 전에는 부동산을 등기할 때 ‘매도증서’에 나오는 가격대로 기재되고 이를 악용해 중간생략 등기가 가능해 중간거래자들이 양도소득세와 취, 등록세 탈세가 보편화했다. 이 때문에 검인계약서는 1978년 8.8조치 때 이미 도입을 약속했지만 시행이 10년 넘게 미뤄지다 1990년 8월에야 시행된 것이다.

하지만 검인계약서 역시 ‘종이호랑이’였다. 검인 담당 공무원이 계약서상 매매 대금의 실질심사권이 없음을 알고 당사자간 담합에 의해 실거래 가격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검인 받을 계약서를 이중으로 작성해 검인을 받았다. 1999년에 발표된 동의대 행정학과의 한 논문은 "부동산 거래로 인한 탈세를 막아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 실질적인 거래금액을 노출시켜 정당한 과세를 하기 위해 도입한 검인계약서제도는 취득세와 등록세의 과세표준액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그 본질적인 의도는 적어지고 오히려 합법적인 탈세가 가능한 제도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1989년 4월1일 '지가공시 및 토지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토지로 인한 모든 과세에 공시지가가 과세표준으로 적용되었고 1990년 7월1일부터 양도소득세와 상속세 및 증여세에도 공시지가가 과세표준으로 적용됐다. 전국의 땅 가운데 대표성이 있는 땅인 표준지에 대해 건교부가 공시지가를 책정하면(표준지공시지가)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기준으로 개별 땅에 대한 공시지가(개별공시지가)를 산정한다. 이처럼 지가는 공시지가로 통일됐으나 건물 가격은 건물분 과세시가표준액으로 산정돼 실제 시장가격과 크게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2005년부터 공시주택가격제도(토지 가격+건물 가격)를 도입해 건물가격의 시가 근접도를 높였다.

이같이 얽히고설킨 부동산 가격체계가

8.31정책 이후 종부세와 재산세 등과 같은 보유세는 공시가격으로,

양도세와 취 등록세는 실거래가로 통일 된 것이다.

 

보유세 과표가 그동안 면적 기준에서 가격기준으로 바뀌면서 2006년1월부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물론 단독주택까지 공시가격제도가 전체 부동산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국세청이 발표해오던 아파트 기준시가도 건교부가 공시가격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용어풀이

 주택 공시가격=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과 단독주택 공시가격으로 나뉜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의 부과 기준이 된다. 과거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국세청이 기준시가란 이름으로 발표하고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건설교통부가 발표했지만, 2006년부터 건교부가 모든 주택의 공시가격을 일괄 발표한다. 공동주택 가격은 가격변동이 심해 모든 주택을 조사해 산정한다. 반면 단독주택 가격은 건교부가 표준주택을 선택해 비준표를 작성해 주면 시·군·구에서 이를 토대로 개별 주택의 토지와 건물을 평가해 공시한다.

 과세 표준=세금을 부과할 때 기준이 되는 가격,수량 등을 말한다. 소득세는 소득액 등이 과세표준이 되지만 재산세 등을 부과할 땐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공시가격의 일정률을 반영한 금액을 과세표준으로 한다. 2006년 재산세의 과세표준은 주택 공시가격의 50%, 종합부동산세는 70%이며 매년 단계적으로 현실화될 예정이다.

 공시지가=땅값은 건교부가 공시지가란 이름으로 발표한다. 전국의 땅 가운데 대표성이 있는 땅인 표준지에 대해 건교부가 공시지가를 책정(표준지 공시지가)하면 각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기준으로 개별 땅에 대한 공시지가(개별공시지가)를 산정한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매년 1월1일, 개별지 공시지가는 5월 31일 공시되며 토지 관련 세금, 토지수용보상가 산정 등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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